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불편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원은 그렇게 스스로 주의하고 고통을 감내해 냈기 때문에 자신의 비밀 을 남 앞에 감쪽같이 숨겨 나갈 수 있었다. 아무도 그의 비밀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비밀이 탄로 나지 않는 한 그의 일상 생활은 더 이상 불편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인체 생리나 해부학서적 같은 걸 뒤져 봐도 성인의 배꼽은 거의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의 외모나 바깥 생활은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점만이라도 무척 다행이었다. 그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그깟 놈의 배꼽, 안 가지고 있음 어때. 그쯤 체념을 하고 될 수 있으면 배꼽에 관한 일들을 잊어버리려 했다. ㉢ 자신으로부터 배꼽이 사라져 버린 사실을,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긴 모든 불편을 잊고, 그 배꼽 없는 생활에 스스로 익숙해져 버리기를 바라 마지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아무리 일상생활에선 드러나게 불편한 점이 없다 해도 그는 역시 배꼽이 없는 자신에 대해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는 자꾸만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어지곤 했다. 있느니라 여기고 지낼 때는 그처럼 무심스럽던 일이 그런 식으로 한번 의식의 끈을 건드려 오자 허원의 상념은 잠시도 그 잃어버린 배꼽에서 떠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회사 출근마저 단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통 하게도 늦잠 버릇이 깨끗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는 눈만 뜨면 사라져 없어진 배꼽 때문에 기분이 허전했고, 그러면 그 허망감을 쫓기 위해 배꼽에 관한 끝없는 상념들을 쌓기 시작했다. (중략) 그리하여 배꼽에 관한 허원의 지식과 사념은 자꾸 더 심오하 고 추상적인 것이 되어 갔다. 그에게는 어느덧 그 나름의 독특한 배꼽론 같은 것이 윤곽을 지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허원은 더욱더 허전해지고, 아무 곳에도 발이 닿아 있는 것 같지 않고, 혼자서 외롭게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그는 또 거듭 그 허망감을 쫓기 위해 자신의 배꼽론을 완벽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마치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의 사념 속에서 잃어버린 배꼽을 되찾아내고, 그것으로 그 실물을 대신해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세상 간에 큰 불편이 없도록 화해시키고 그것으로 그 난감스런 허망감을 채우려는 듯이. 그의 배꼽론은 가령 이런 식으로까지 발전되어 있었다. ― 우리는 누구나 배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어머니로부터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이 우주의 한 단자(單子)로서 고독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그 탯줄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우리 영혼은 언제까지나 그 어머니의 탯줄과 이어지려 하고, 또다시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탯줄과 이어져 나가면서 우리 존재를 설명하고 근원을 밝혀 나가며, 마침내는 마지막 어머니의 탯줄이 이어지는 우리들의 우주와 만나게 된다…… 우리의 배꼽은 우리가 그 마지막 우주와 만나고자 하는 향수의 표상이며 가능성의 상징이며 존재의 비밀로 나아가는 형이상학이다. 그 비밀의 문이다…… 그는 어느덧 배꼽에 대해 당당한 일가견을 이룬 배꼽 전문가가되어 가고 있었다. ㉣ 어느 해 여름이었다. 하니까 그것은 허원이 자신의 배꼽을 잃어버리고 나서 불편하기 그지없는 세 번째의 여름을 맞고 있을 때였다. 그는 물론 배꼽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해 아직도 완전힌 익숙해지질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사념 역시 언제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배꼽에 매달려 거기에서밖에는 영영 더 이상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다. 그 대신 허원은 이제 그 자신의 배꼽론에 대해선 매우 확고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럴 즈음이었다. 허원은 문득 세상 사람들이 수상쩍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턴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세상 사람들역시 무슨 이유에선지 이 인간 장기의 한 조그만 흔적에 대해 심상찮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배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기왕부터 있어 온 것을 여태까지 서로 모르고 지내 오다가 비로소 어떤 기미를 알아차리게 된 것인지, 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관심을 내보이게 할 만한 무슨 우연찮은 계기가 마련되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그런 관심이 시작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쨌든 사실이었다. 주의를 기울여 보니 관심의 정도도 여간이 아니었다. 한두 사람, 한두 곳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듯 배꼽 이야기가 일반화의 기미를 엿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제 그걸 신호로 아무 흉허물 없이 터놓고 지껄이거나 신문, 잡지 같은 데서 진지하게 논의의 대상을 삼기도 하였다. ㉤ 배꼽에 관한 논의가 그렇듯 갑자기 시중 일반에까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묘한 현상이었다. - 이청준, 배꼽을 주제로 한 변주곡 -
-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배꼽을 주제로 한 변주곡 은 주인공이 배꼽을 잃어버렸다는 허구적 설정으로 시작하여, 이후 배꼽을 둘러싼 희화적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주인공은 으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져 불편한 생활을 이어 가던 중 배꼽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배꼽에 관련된 개인적 상황은 물론 인간 존재와 사회 상황에 대한 심층적 의미의 탐색이 이루어진다.
① ‘의식의 끈’이 ‘건드려’짐으로써 주인공이 비정상적 문제 상황에 지속적으로 주목하게 된 것이겠군. ② ‘회사 출근’을 포기하게 되고 ‘늦잠 버릇’이 사라진 상황은, 주인공의 일상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군. ③ ‘배꼽’을 ‘탯줄’에 연관하여 이해하는 것은, 개인에 관련된 생각을 ‘우주와 만나’는 ‘심오하고 추상적인’ 생각으로 확장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할 수 있겠군. ④ ‘그의 사념’이 도달한 ‘배꼽론’의 ‘확고한 경지’는 사소한 것의 심층적 의미를 탐색할 때 이를 수 있으므로, 그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실현이 가능해지겠군. ⑤ ‘기묘한 현상’은, ‘배꼽 이야기’가 ‘일반화’되는 상황이 뜻밖이지만 ‘사실’로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일컬은 말이라고 할 수 있겠군.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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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분석: 이청준의 소설 「배꼽을 주제로 한 변주곡」의 일부이다. 주인공 허원은 배꼽을 잃어버린 후, 그 상실감과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배꼽론'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사념 체계를 발전시킨다. 그는 배꼽이 없다는 사실에 얽매여 회사도 그만두고 배꼽 생각에만 몰두한다. 3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는 배꼽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사회적으로 배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기묘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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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 분석:
- ①: '의식의 끈'이 건드려져 주인공이 배꼽이 없는 비정상적 상황에 계속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본문의 "한번 의식의 끈을 건드려 오자 허원의 상념은 잠시도 그 잃어버린 배꼽에서 떠나 있을 수가 없었다"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적절함)
- ②: '회사 출근'을 단념하고 '늦잠 버릇'이 사라진 것은 배꼽 상실로 인한 주인공의 일상 변화를 보여준다. (적절함)
- ③: 배꼽을 탯줄, 어머니, 우주로 연결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배꼽을 심오하고 추상적인 의미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적절함)
- ④: 선지에서는 '확고한 경지'가 '그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실현이 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 ㉣ 단락을 보면 "그의 사념 역시 언제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배꼽에 매달려 거기에서밖에는 영영 더 이상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주인공은 배꼽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으며, 그 집착과 허망감을 메우기 위해 배꼽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라는 설명은 본문의 내용과 정반대이다. (적절하지 않음)
- ⑤: '기묘한 현상'은 배꼽 이야기가 시중에 일반화되는, 뜻밖이지만 사실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적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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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도출: 선지 ④는 주인공이 배꼽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본문의 핵심 진술과 모순되므로 적절하지 않은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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