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 장석남, 배를 밀며 -(나)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 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 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 * 치병 : 병을 다스림. * 환후 : 병을 정중하게 이르는 말. (다)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만큼 표현의 욕구로 흘러 넘치는 것도 없다.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 편지를 쓰게 한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어렵고 진정하며 운명적인가를 설명하고 싶었다. 편지는 사람을 설득하거나 매혹시키는 방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랑의 편지는 마지막 순간, 도구적이지 못하다. 세상의 모든 글쓰기가 최후의 순간에는 처음에 품었던 소소한 의도를 배반하는 것처럼. 그 통제할 수 없는 익명의 욕구가 그 편지의 현실적인 목표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사랑의 편지에는 아무 전언도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결정적인 정보나 주장이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내 고백을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충만한 느낌. 희미한 불빛 아래서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할 때처럼,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 따위. 고백이란 결국 2인칭을 경유하여 1인칭으로 돌아온다. 그의 들끓는 고백의 언어들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왔다. 한동안 그는, 사랑하는 ○○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자주 썼다. 그녀는 그의 편지를 사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편지 속의 그’를 그녀는 사랑했다. 편지 속에는 그가 찾아낸 자신의 또 다른 영혼이 있었다. 또 다른 영혼의 ‘그’는 순수한 열정과 끝 모를 동경과 깊은 이해심을 가진 존재였다. 그도 역시 그녀처럼 자신의 편지 속 1인칭 화자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하지만 너무 뻔해서 가혹했던 지리멸렬한 시간들 속에서 그는 편지 속의 1인칭 주체를 잊어버렸다. 편지조차 쓸 수 없는 시간들이 무심하게 지나가고, 다시 편지를 쓰고 싶었을 때, 그는 이미 ‘편지 속의 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편지 속의 그’를 연기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자신의 비루함을 뼛속 깊이 실감했다. 그는 ‘사랑하는 ○○에게’라는 편지를 쓰고 싶어 하는 자신 속의 어떤 늙지 않는 영혼을, 그 순수한 인격을 외면하고 싶었다. ⓑ 누군가가 듣기를 바라는 모든 고백이란, 위선이 아니면 위악이다. - 이광호, 이젠 되도록 편지 안 드리겠습니다 -
- <보기>를 참고하여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시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심적 상태에 놓인 화자의 발화로써 형상화한다. (나)에 나타나 있는 독특한 발화 방식, 즉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서술, 어휘의 반복적 출현, 맥락이 없어 보이는 구절들의 배열, 수시로 등장하는 말줄임표와 쉼표 등은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시적 장치들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사랑의 기억과 함께 상실의 고통을 안고 남은 생을 살아 내야 하는 화자의 복합적인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 내는 역할을 한다.
① ‘킥킥’은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웃음의 의성어로서, 사랑과 슬픔이 내재된 화자의 복합적인 정서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표현이겠군. ②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는 말줄임표와 쉼표를 사용한 서술로서, 상실의 고통으로 인하여 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화자의 심적 상태를 보여 주는 표현이겠군. ③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는 맥락이 없어 보이는 표현들이 한데 이어진 서술로서, 감정들이 뒤섞인 화자의 내면을 보여 주는 표현이겠군. ④ ‘마음의 무덤’은 화자의 심적 상태를 형상화한 서술로서, 상실의 고통을 안고 생을 살아 내야 하는 화자의 내면을 비유한 표현이겠군. ⑤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서술로서, 대상에 대하여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화자의 내면을 보여 주는 표현이겠군.
[THOUGHT] (나) 시는 반복적인 발화와 음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복합적인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 ① '킥킥'은 반복되는 웃음의 의성어로, 사랑과 슬픔이 교차하는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②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는 말줄임표와 쉼표를 사용해 화자의 단절된 심적 상태를 잘 보여준다.
- ③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는 맥락이 없어 보이지만 감정이 뒤섞인 화자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 ④ '마음의 무덤'은 상실한 사랑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지만, 이는 화자의 현재 심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 ⑤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서술이지만, 이는 화자가 대상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질문에서는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적절하지 않은 감상은 ②이다. '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지는'이라는 표현은 시의 맥락과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은 기억이 생생함을 암시한다.
[정답] ②
[THOUGHT]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은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보기>에서 설명한 대로 (나)의 발화 방식은 화자의 복합적인 내면을 표현하는 시적 장치이다.
- ① '킥킥': 반복적인 의성어이지만, 사랑과 슬픔이 교차하는 화자의 정서를 잘 드러내므로 적절한 설명이다.
- ②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이 구절은 말줄임표와 쉼표로 단절감과 상실의 고통을 표현한다. 그러나 발문에서는 "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지는"이라고 해석했는데, 시의 문맥상 오히려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므로 적절하지 않은 설명이다.
- ③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감정이 뒤얽힌 내면 상태를 보여주므로 적절한 설명이다.
- ④ '마음의 무덤': 상실한 사랑에 대한 비유로, 화자의 고통을 상징하므로 적절한 설명이다.
- ⑤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대상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표현이므로 적절한 설명이다.
따라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②이다.
[정답]
\boxed{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