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blem Analysi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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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blem Statement

철학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격’, 그중 ‘나’를 ‘자아’라고 한다.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다.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에 과거에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그러나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즉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언가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A][이를 바탕으로 칸트는 영혼이 인격이라는 견해를 반박한다.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두 전제 모두 납득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전제들로부터 ‘영혼이 인격이다.’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의식’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의식한다는 뜻이지만, ‘생각하는 나는 생각한다.’와 다름없는 두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의식’은 무언가가 꼭 실재함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칸트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인격의 존재를 직접 증명하는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라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래야 경험적 판단, 윤리적 판단 등의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데, 이러한 구성은 통시적으로 동일한 인격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스트로슨은 자아를 인식하는 방식이 경험적 인식의 방식과 구별된다는 칸트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철학적 상상에 불과하다고 칸트를 비판한다. 인격의 문제에서 신체를 간과한 칸트와 달리, 스트로슨은 인격을 의식과 신체의 복합체로 본다. 스트로슨에 따르면 시공간적 세계 안에서 우리의 신체를 매개로 대상이 경험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며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적 인식들로부터 추상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공간적 세계에서의 경험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을 뒷받침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기의식도 마찬가지로 경험에 의존하기에 자기의식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칸트의 견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롱게네스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없이는 경험적 인식이 성립할 수조차 없으므로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는 자아와 인격이 시공간적 세계를 경험하는 인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롱게네스는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며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율성을 지닌 존재라는 칸트의 견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은 시공간적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것들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신체가 있고 살아있어야 하므로 인격의 동일성의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통시적으로 인식하는 신체라고 롱게네스는 주장한다.

17.윗글을 바탕으로 \textless 보기\textgreater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textless 보기\textgreater 갑: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 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을: 그렇지 않아.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본래의 자신과 동일한 인격이야. 비록 프로그램은 신체가 없지만 우리 두뇌와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사고 기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거든. 인격의 동일성은 어떤 가정도 두지 않고 이러한 사고 기능의 동일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해.

①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만으로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갑의 입장은 옳겠군. ewline ② 스트로슨의 견해에 의하면, 신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에게 인격이 귀속될 수 없다는 을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ewline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ewline ④ 칸트의 견해에 의하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은 그것에 대한 가정이 선행될 필요 없이 사고 기능의 동일성을 통해 판단된다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ewline ⑤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과 상이한 존재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수행될 수 있는 사고 기능이 인격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ewline

Ground Truth
Execution Trace
Reasoning Process

[THOUGHT]

  1. 칸트 이전의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영혼)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 속에 지속한다는 것만으로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즉, 영혼(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인격 동일성의 근거다.
  2. 그런데 <보기>의 갑은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고, 살아 있는 신체도 인격의 요소”라고 하여, 영혼(생각하는 나) 지속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는 칸트 이전 유력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3. 따라서 “칸트 이전 견해에 따르면 갑의 주장은 옳지 않다”라고 반응하는 ③이 적절하다.
    (①은 갑의 입장을 반대로 서술했고, ②는 ‘신체 없는 존재는 인격 불가’라는 주장을 을에게 잘못 귀속했으며, ④는 칸트가 ‘가정이 선행된다’고 본 점과 반대이고, ⑤는 롱게네스가 신체(자기 것으로 인식되는 신체)를 기준으로 본 점과 반대다.)

\boxed{③}

Final Model Output

Comparative Analysis (P3) (Average across runs)

Avg Time Taken

K-EXAONE-236B-A23B
125.4
Solar Pro 3 (Round 2)
63.8
Gemini-3-Pro-Preview
43.1
GPT-5.2 (high)
32.5
Kanana-2-30B-Thinking-2601
16.0

Avg Token Usage

K-EXAONE-236B-A23B
9926.0
Solar Pro 3 (Round 2)
7704.3
Gemini-3-Pro-Preview
5685.0
Kanana-2-30B-Thinking-2601
3697.7
GPT-5.2 (high)
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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