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두고 온 것들이 빛나는 때가 있다\ \textbf{빛나는 때를 위해} 소금을 뿌리며\ 우리는 이 \textbf{저녁}을 떠돌고 있는가\ \textbf{사방을 둘러보}아도\ 등불 하나 켜 든 이 보이지 않고\ 등불 뒤에 속삭이며 \textbf{밤을 지키는}\ \textbf{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는다\ 잊혀진 목소리가 살아나는 때가 있다\ 잊혀진 ㉠ 잊혀진 다른 목소리의 끝을 찾아\ 목메이게 부르짖다 잦아드는 때가 있다\ 잦아드는 ㉡를 찾아 칼날 세우고\ 우리는 이 \textbf{새벽}길 숨가쁘게 넘고 있는가\ 하늘 올려보아도\ 함께 어둠 지새던 \textbf{별 하나 눈뜨지 않}는다\ 그래도 \textbf{두고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한 번은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뿌린 \textbf{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textbf{오던 길 환히 비춰 주}고 있으니 -이시영, 「그리움」- (나) 감나무 잎새를 흔드는 게\ 어찌 ⓐ뿐이랴.\ 감나무 \textbf{잎새}를 \textbf{반짝}이는 게\ 어찌 햇살뿐이랴.\ 아까는 ⓑ가\ 따다다닥 찍고 가더니 봐 봐, 시방은 ⓒ가\ 쪼르르 타고 내려오네.\ 사랑이 끝났기로서니\ 그리움마저 사라지랴,\ 그 그리움 날로 자라면\ 주먹송이처럼 커 갈 땡감들.\ 때론 머리 위로 ⓓ이고\ 때론 온종일 ⓔ 맞아 보게.\ 이별까지 나눈 마당에\ 기다림은 웬 것이랴만,\ \textbf{감나무 그늘}에 \textbf{평상을 놓}고\ 그래 그래, \textbf{밤}이면 \textbf{잠 뒤척}여\ 산이 우는 소리도 들어 보고\ 새벽이면 퍼뜩 깨어나\ 계곡 물소리도 들어 보게.\ 그 기다림 날로 익으니\ 서러움까지 \textbf{익어}선\ 저 \textbf{짙푸른 감들}, 마침내\ 형형 \textbf{등불을 밝힐 것}이라면\ 세상은 어찌 환하지 않으랴.\ 하늘은 어찌 부시지 않으랴. -고재종, 「감나무 그늘 아래」- (다) 천지간에 만물이 소리를 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초목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체로 소리가 나지 않으나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난다. 그런즉 초목이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금석은 때리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소리가 나지 않으나 물건이 때리면 소리가 난다. 그런즉 금석이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물건이다. 무릇 크고 작은 만물이 소리를 내는 것은 또한 반드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안으로는 오장이 있고 밖으로는 형체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어찌 소리를 내겠는가. 기(氣)가 안에 쌓이고 밖으로 드러난 뒤라야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런즉 사람이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기이다. 소리는 한 가지가 아니니, 쓸모없는 소리가 있고 쓸모 있는 소리가 있다. 재채기 소리와 코 고는 소리는 사람의 소리 가운데 쓸모없는 것이고, 탄식하고 담소하는 소리는 사람의 소리 가운데 쓸모 있는 것이다. 쓸모 있는 소리에는 아름다운 소리와 추한 소리가 있다.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좋아하면 아름다운 소리이고, 미워하면 추한 소리이다. 아름다운 소리에는 실상이 있는 소리가 있고 흩어지는 소리가 있다. 입에서 나와 글로 쓰이지 못하면 흩어지는 소리가 되고, 입에서 나와 글로 쓰이면 실상이 있는 소리가 된다. 실상이 있는 소리에는 바른 것이 있고 삿된 것이 있다. 또 바른 것 같으면서 삿된 것도 있고, 혹 삿된 것 같으면서 바른 것도 있다. ㉢로서 남에게 듣기 좋고, 남에게 듣기 좋아 글로 쓰이고, 글로 쓰였으면서 바름에 합당하다면 그것을 일컬어 ㉣라 한다.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최립은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에 가깝다. 그의 문장이 비록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 뜻은 바름을 향한다. 그러니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바르게 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내가 들으니 소리를 내는 만물은 그 본체가 크면 그 소리 또한 크고, 그 본체가 작으면 그 소리 또한 작다고 한다. 최립은 소리가 크니 그 본체가 큰 것을 알 만하다. 사람의 본체는 마음이니 그의 마음이 가히 크다고 하겠다. 내가 또 들으니 크게 부딪치면 큰 소리가 나며, 작게 부딪치면 작은 소리가 난다고 한다. 큰 바람이 초목을 움직이면 천지를 뒤흔들 듯하나, 작은 바람이 불면 한 번 살랑거림에 불과할 뿐이다. 금석을 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사람의 소리는 기가 크면 그 소리가 크게 나고 기가 작으면 그 소리가 작게 나니, 최립의 기는 가히 크다고 하겠다. -이이, 「최립에게 주는 글」-
- \textless보기\textgreater를 참고하여 (가),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textless보 기\textgreater(가)와 (나)는 밝음과 어두움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양상이 서로 다르다. (가)는 연대를 상실한 암울한 현실 상황을 어두운 밤으로 표상하고, 빛이 회복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드러낸다. 이러한 소망은 소금을 뿌리며 그리운 이를 찾아다니는 행동으로 형상화된다. (나)는 자연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명암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성숙에 대한 성찰을 드러낸다. 이러한 성찰은 자연물과 내면을 동일시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양상을 그려 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①(가)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은, ‘밤을 지키는’ 이의 눈을 피해 다니며 그리운 존재를 찾고 있는 암울한 현실 상황을 보여 주는군. ②(가)에서 ‘오던 길’을 ‘소금들’이 ‘환히 비춰 주’는 것은, ‘두고 온 것들’이 되살아날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빛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실현될 수 있음을 암시하겠군. ③(나)에서 ‘반짝’이는 ‘잎새’와 ‘그늘’을 함께 지닌 ‘감나무’ 아래에 ‘평상을 놓’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에서 내면에 대한 성찰을 이어 가고 있음을 나타내는군. ④(가)에서 ‘별 하나 눈뜨지 않’는 밤은 함께하던 이가 보이지 않는 상실의 상황을, (나)에서 ‘잠 뒤척’이는 ‘밤’은 마음이 감처럼 ‘익어’ 가는 데 필요한 성숙의 시간을 의미하겠군. ⑤(가)에서 ‘빛나는 때를 위해’ ‘저녁’부터 ‘새벽’까지 길을 걷는 행동과, (나)에서 ‘짙푸른 감들’이 ‘등불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은 모두, 밝음이 나타날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는군.
분석
주어진 문제는 (가)와 (나)의 시를 비교하여, **"보기"**에 제시된 해석에 따라 적절하지 않은 설명을 찾는 문제입니다.
"보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가): 연대를 상실한 암울한 현실을 어두운 밤으로 표현하고, 빛이 회복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드러냄.
→ 이 소망은 소금을 뿌리며 그리운 이를 찾아다니는 행동으로 형상화됨. -
(나): 자연 속에서 공존하는 명암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성찰을 드러냄.
→ 이 성찰은 자연물과 내면을 동일시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양상을 그려냄.
각 선택지 분석
①
(가)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등장나지 않는’ 등한 시소리’를 확인하는 것은, ‘밤을 지키는’ 이의 눈을 피해 다니며 보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암울한 현실 상황을 보여 주는가?
- 적절함:
(가)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등 하나 켜 들은 이 보이지 않고", "등장나지 않는 발자국 소리"로 상징되는 것은 진정한 연결이 단절된 채 헤매는 현실을 보여줌.
→ "밤을 지키는" 이가 보이지 않아 보고 싶은 존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잘 드러냄.
✅ 적절함
②
(가)에서 ‘오던 길’을 ‘소금들’이 ‘환히 비추어 주’는는 것은, ‘두고 온 것들’이 되돌아올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빛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실현될 수 있음을 암시하겠군.
- 적절함:
(가)의 "우리가 뿌린 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오던 길 환히 비춰 주고 있으니"는 과거에 남긴 것들이 빛을 받아 미래에 다시 빛날 것이라는 희망을 상징함.
→ 소금이 별빛이 되어 길을 비추는 이미지로 빛의 회복을 암시.
✅ 적절함
③
(나)에서 ‘반짝’이는 ‘잎새’와 ‘그늘’을 함께 지닌 ‘감나무’ 아래에 ‘평상을 놓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에서 내면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군.
- 적절함:
(나)에서 "감나무 잎새를 반짝이는"과 "감나무 그늘"은 자연 속의 밝음과 어두움을 상징함.
→ 이 두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자연과 내면의 조화를 통해 성숙을 반영하는 성찰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보기"의 설명과 부합.
✅ 적절함
④
(가)에서 ‘별 하나 눈뜨지 않’는 밤은 함께하던 이가 보이지 않는 상실의 상황을, (나)에서 ‘잎니다 뒤척’이는 ‘밤’은 마음이 LIKE 감처럼 ‘익어’ 가는 데 필요한 성숙의 시간을 의미하겠군.
- 적절함:
- (가)의 "별 하나 눈뜨지 않는 밤"은 완전한 어둠과 상실감을 상징함.
- (나)의 "밤이면 잎서"는 성찰과 성숙의 과정을 나타내는 시간으로, "림처럼 익는다"는 표현은 시간을 두고 성장하는 모습을 잘 드러냄.
✅ 적절함
⑤
(가)에서 ‘빛나는 때를 위해’ ‘저녁’부터 ‘새벽’까지 길을 걷는 행동과, (나)에서 ‘짙푸른 감들’이 ‘등불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은 모두, 밝음이 나타날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는군.
-
부적절함:
- (가)에서 길을 걷는 행동은 "소금을 뿌리며 그리운 이를 찾아다니는 행동"으로, 소금이 별빛이 되어 길을 비추는 것이 빛의 회복을 상징함.
→ 그러나 "저녁부터 새벽까지 길을 걷는 행동" 자체가 빛의 회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님.
→ 빛의 회복은 소금이 별빛이 되어 길을 비추는 것에서 비롯되며, 길게 걷는 행동 자체는 희망의 직접적 원인 아님. - (나)에서 "짙푸른 감들이 등불을 밝힌다"는 것은 성찰의 결과로서의 희망을 나타내지만, "보기"에서는 (나)가 성찰을 위한 자연 이미지의 조화를 강조할 뿐, 특정한 희망의 전환점으로 보지 않음.
→ 그러나 문제는 (가) 부분에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길을 걷는 행동"이 빛의 회복을 보여주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는 점임.
- (가)에서 길을 걷는 행동은 "소금을 뿌리며 그리운 이를 찾아다니는 행동"으로, 소금이 별빛이 되어 길을 비추는 것이 빛의 회복을 상징함.
-
결론:
(5)는 (가)의 행동을 빛의 시작점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음.
→ "보기"에서는 (가)의 희망이 소금이 별빛이 되어 길을 비추는 것에서 비롯됨을 강조하지만,
(5)는 길게 걷는 행동 자체가 빛의 회복을 보여준다고 보고 있음.
→ 이는 내용적 오류를 포함하므로 적절하지 않음.